노무현이 문제였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주사파 세력이 정부 내 요직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과거에는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세력들이 국가 운영에 깊이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들이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며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특히, 당시 정부가 반미 정서를 조장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고, 거리에서는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미국과의 동맹이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국가의 방향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처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반미 정서와 함께 반일 감정도 강하게 부추겨졌다. 물론, 한일 간 역사적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 분위기는 단순한 역사 인식 차원을 넘어 감정적인 적대감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보였고, 대중들은 점점 극단적인 사고로 치닫고 있었다.

그 무렵,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대학생들이 김일성과 김정은을 찬양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 경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젊은 세대 중 일부가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믿기 어려웠다. 이런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이념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노무현을 선택했던 것을 깊이 후회했다. 그의 개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둘로 갈라놓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정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큰 틀에서 하나로 움직이고 있었다. 4·19 혁명 당시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도, 민주화 항쟁도 국민이 하나 되어 함께 이뤄낸 것이었다. 물론 정치적 이견이 있었지만, 국가를 위한 대의에는 국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는 극과 극이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하는 사회로 변했다. 정치적 논쟁이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서, 상대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분열의 시작이 노무현 정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개혁이 가져온 것은 사회 통합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극단적 이념과 정파 싸움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노무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그때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이회창은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지도자였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더욱 안정적으로 이끌어 갔을 가능성이 크다. 반미,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외교 전략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주말이 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국민이 정부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지나치게 분열된 정치 구조 속에서 끝없는 대립과 소모적인 시위가 반복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이런 사회적 낭비가 반복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발전하고 안정된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지금의 혼란과 갈등을 바라보면, 20여 년 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실감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시작이 대한민국을 극단적 대립으로 몰아넣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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